김민혁 수원FC전 선제골 관여...송승민은 풀타임 출장[S&B컴퍼니]

광주FC의 공격형 미드필더 김민혁(24)이 선제골에 관여하며 좋은 활약을 했지만 팀의 역전패를 막지 못했다. 송승민(24)은 풀타임을 뛰었다.   김민혁은 3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수원FC와의 원정경기(광주 1-2 패)에 선발 출장해 후반 29분 파비오와 교체됐다. 공격 포인트는 올리지 못했지만 상대 진영에서 동료들과의 좋은 연계 플레이로 공격을 이끌었다. 또 끈질긴 수비력까지 선보였다. 왼쪽 날개로 나온 송승민도 빠른 스피드로 상대 측면을 괴롭혔다.   김민혁은 특히 전반 3분 날카로운 정조국의 선제골을 이끌어냈다. 김민혁은 페널티지역에서 조성준의 힐패스를 받아 중앙으로 치고 나간 뒤 슛을 날렸다. 수비수의 육탄방어에 막혀 골문으로 향하지는 않았지만 이 공이 정조국에게 흘렀다. 달려오던 정조국은 그대로 강슛을 날려 그물을 갈랐다.   하지만 광주는 이 골을 지키지 못하고 수원FC에 역전패했다. 전반 37분 오군지미에게 동점골을 내준데 이어 후반 44분 이승현에게 역전골을 허용했다. 이로써 광주는 1승 1무 1패로 6위를 기록했다.   한편 광주는 오는 9일 홈에서 울산 현대를 상대로 시즌 2승째를 노린다.

by 운영자 | Date 2016-04-03 23:06:33 | Hit 568

송승민 AS 광주 첫 승 기여[S&B컴퍼니]

광주FC의 날개 송승민(24)이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올시즌 첫 승을 이끌었다. 같은 팀의 수비수 이종민(33)은 풀타임, 미드필더 김민혁(24)은 후반 43분을 뛰며 승리에 기여했다.  광주는 19일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2라운드 홈경기에서 후반 19분 송승민의 백헤딩 패스를 받은 정조국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 지난 12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개막전에서 3-3으로 비긴 광주는 이번 승리로 1승 1무의 좋은 출발을 하고 있다.  송승민은 올시즌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음에도 아쉬워했다. 송승민은 "도움은 기록했지만 더 분발해야 한다. 슈팅 숫자는 많은 데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며 공격수로서 다음 경기에선 반드시 골을 터트리겠다고 밝혔다.  시즌 초 산뜻한 행보를 걷고 있는 광주는 A매치 일정으로 휴식기를 가진 뒤 다음달 3일 승격팀 수원FC를 상대로 원정경기를 치른다. 

by 운영자 | Date 2016-03-20 09:58:27 | Hit 669

김민혁 개막전 1도움 활약...이종민,송승민도 무승부 기여[S&B컴퍼니]

광주FC의 공격형 미드필더 김민혁(24)이 이적 후 첫 경기인 포항 스틸러스와의 K리그 개막전서 1도움으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 김민혁은 12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포항과의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016 개막전서 73분을 뛰며 전반 16분 선배 정조국의 선제골을 도왔다. 비록 팀이 후반 퇴장으로 인한 수적 열세로 2-3으로 역전을 허용하며 고전 끝에 3-3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지만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케 했다.  주장 이종민과 송승민은 90분 풀타임을 뛰었다. 특히 주장 이종민은 2-3으로 패색이 짙던 경기 종료 직전 천금같은 페널티킥을 얻어내 무승부를 끌어냈다.  김민혁의 개막전 선발 출전은 어느정도 예상됐었다. 정조국과 FC서울에서 함께 이적한 김민혁은 올시즌을 앞두고 남기일 광주 감독으로부터 입대한 임선영의 공백을 메워줄 선수로 기대받았기 때문.    경기 초반엔 포항의 수비형 미드필더 황지수에 밀려 공을 잡지 못했으나 단 한 번의 기회를 잘 살렸다. 전반 16분 공중볼이 자신의 발 앞에 떨어지자 지체하지 않고 전방의 정조국에게 스루패스를 찔러 넣었다. 이를 잡은 정조국은 놓치지 않고 그물을 갈랐다. 김민혁은 골이 들어가자 주먹을 불끈 쥐며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나눴다.  광주는 후반 20분 정조국의 추가골로 2-0으로 앞서 나갔으나 후반 24분 이으뜸의 퇴장으로 수적 열세에 빠졌다. 이어 후반 42분 양동현, 후반 45분 심동운, 후반 추가시간 황지수에게 골을 내주며 2-3 역전을 허용했다. 김민혁은 후반 28분 박동진과 교체됐다.  다행히 광주는 경기 종료 직전 이종민이 김대호에게 파울을 당해 페널티킥을 이끌어냈고 김정현이 이를 성공시켜 3-3 동점으로 개막전을 3-3 무승부로 마쳤다. 광주는 19일 홈인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맞아 첫 승을 노린다. 

by 운영자 | Date 2016-03-12 19:21:38 | Hit 632

S&B컴퍼니 2016년 새식구, 송승민은 누구? [베스트일레븐]

  (베스트 일레븐)     임기환의 인사이트세계 축구 뿐 아니라 한국 축구도 1992년생이 대세다. 손흥민과 김진수는 각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재성과 황의조는 K리그 클래식에서 선보인 활약을 바탕으로 2015년에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밖에 이종호·손준호 등 ‘92둥이’ 중 뛰어난 선수가 유독 많다. 이들은 분명 한국 축구의 현재와 미래다.이들에 비해 조금은 느릴지 모르나 소리 없이 자신의 그릇을 채우는 이가 있다. 2014시즌과 2015시즌 광주 FC의 승격과 잔류를 이끈 송승민이다. 어쩌면 지금은 그릇을 채우는 게 아닌, 그릇의 외연을 넓히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송승민은 2014시즌 19경기에 출전해 2도움, 2015시즌엔 33경기 3골 4도움을 올리며 광주에 한줄기 빛이 됐다. 눈에 확 뛰지는 않지만 분명 나아졌다. 프로의 최우선 지표는 경기 출전 수다. 이 대목에서 일취월장했다. 광주에서 그보다 많이 뛴 선수는 파비오(37경기) 단 한 명뿐이다. 그는 떳떳한 광주의 주전 윙어다.     강원도 촌놈의 축구 유학기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송승민은 태장 초등학교 3학년 말에 담임인 체육 선생님 권유로 축구에 입문했다. 한국에서 프로 축구 선수의 유년기는 틀에 박힌 듯 비슷하다. 체육 시간에 눈에 띄는 아이들은 체육 선생님들의 아주 좋은 표적이 된다. 또래 중 가장 공을 잘 찼던 송승민 역시 체육 선생님의 손길을 벗어날 이유가 딱히 없었다. 다행인지 우여곡절도 없었다. 그도 축구를 좋아했고, 부모님도 적극 지원했다. 제대로 축구를 하기 위해 인천 부개서초등학교로 전학했다. ‘큰 물’에서 뛰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권유가 크게 작용했다. 그렇게 원주를 떠나 인천으로 왔다. 하지만 이른 나이에 하게 된 타향살이는 쉽지 않았다. 지역의 축구 명문 부평동중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 단체로 합숙을 하거나 친구 집에 신세를 졌다. 훈련 강도는 차원이 달랐다. 가족이 보고 싶었다. 밤에 남몰래 혼자 울기도 했다.“처음으로 축구가 힘든 시기였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집에 간 게 다였죠. 그래도 다행히 친구가 많아 큰 어려움 없이 잘 견뎠어요. 훈련은 고등학교(경희고) 때가 더 힘들었어요. 그런데 가장 기억에 남아요. 애들이랑 합숙을 하는데 힘들면서도 가족 같은 분위기 때문에 재미있었죠. 그런데 매번 현재가 힘든 것 같아요. 프로는 힘들어도 오히려 불안해서 스스로 더 하게 되죠. 하하.”대학(인천대) 진학 이후 마음이 편해졌다고 했다. 이 시기의 거의 모든 고 3이 그렇듯, 정형화 된 단체 생활에서 벗어난 해방감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 안타까운 안도감은 왠지 우리네 학원 축구의 케케묵은 병폐 같이 들렸다. “틀 안에서 벗어난 설레임이라 할까요?” 그러나 그 설렘은 안타깝게도 오래 가지 못했다. 주위 환경이 그를 힘들게 했다. 선후배 위계 질서가 무척 심해 학교 생활이 힘들었단다. “벗어나고 싶었어요.” 일상이던 축구가 힘드니 흥미도 떨어졌다. 늦게 찾아온 사춘기는 혼란함을 더했다. 힘든 마음은 결국 축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다. 하루는 박재홍 당시 인천대 감독이 집까지 찾아와 만류했다. ‘여기서 그만두면 안 된다. 넌 충분히 크게 될 수 있다. 내가 장담하마.’ 박 감독의 진심 어린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 용기가 생겼다. 축구화를 다시 바로 신었다. “그때 포기했으면 군대를 가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이후에도 어떻게든 축구와 연을 이어갔을 것 같아요.”           프로에서 입은 낯선 옷축구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를 넘긴 송승민은 대학 졸업 후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5순위로 광주 FC에 입단했다. “내심 높은 순위를 기대했는데 (지명되지 못해) 불안했죠. 그러다 마지막으로 불렸어요. ‘이제 시작이구나. 힘든 시간을 견뎌야 겠구나’ 불안과 설레임이 반반이었죠. 남기일 감독님요? 제2의 임선영이라고. 키워보고 싶었다고 하대요.” 남기일 감독은 송승민에게 임선영의 모습을 봤다. 그러고 보니 둘은 체격 조건(임선영 185㎝ 77㎏, 송승민 187㎝ 77㎏)부터 포지션 변천사까지 쏙 빼다 닮았다. 실제로 친한 선배인 임선영은 프로 입단 전에 최전방 공격수로 종종 활약했다. 그러나 프로 데뷔 이후엔 조금씩 위치를 바꿔 공격형 미드필더나 중앙 미드필더로 내려와 공격수를 도왔다. 송승민은 임선영의 포지션을 되감아 올라간다.출발은 중앙 수비수였다. 부개서초 당시 감독이 시야를 키우라며 센터백을 권유했다. 그리고 그의 위치는 점점 올라섰다. 수비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그리고 센터포워드까지. 어릴 때 키운 시야는 앞선으로 올라가 플레이 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의 시야는 광주에 와서 우연히 줄어들었다. 경기를 보는 눈이 줄었다는 뜻은 아니다. 또 한 번 포지션이 바뀌었다는 의미다. 360도가 열려있는, 탁 트인 중앙이 아닌 180도의 시야각을 갖고 살아가는 측면 공격수로 변신했다.“원래는 센터 포워드였는데, 광주 입단 이후 측면을 많이 봤어요. 측면 날개 공격수는 축구를 시작한 뒤로 처음이었어요. 첫 시즌엔 선발로 8경기 정도를 뛴 거 같아요. 포지션 적응 기간이었죠. 신인임에도 기회를 꽤 많이 받았는데 활약이 저조했어요. 새 포지션요? 생존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죽어라 했죠.”스스로 말하길 ‘수비형 윙어’라 했다. 측면은 빠른 속도의 격전장이다. 순간의 틈을 기다리지 않는 치열한 전장에서 느리면 도태된다. 프로축구연맹 기록에 따르면 송승민의 100m 기록은 13초 플랫이다. 측면 윙어치곤 빠른 편이 아니다. 송승민은 체력과 지구력으로 승부를 건다. 광주에서 체력 테스트를 보면 1위에 오르는 선수가 바로 그다. 순간 속도는 떨어질 지라도 보폭이 커 한 번 탄력을 받으면 치고 나가는 가속이 좋다. 물론 골 결정력 등 고쳐야 할 단점도 아직 많다. 헌데 지금 포지션이 만족스럽단다. “지금은 오히려 센터포워드보다 나은 것 같아요.” 이유가 있을까?“유럽에서도 측면에 선 선수들의 키가 큰 경우는 별로 없어요. 저는 반대죠. 물론 키가 커서 순발력에선 전문 측면 공격수에 비해 뒤질 수는 있어요. 하지만 반대로 키가 큰 윙어를 주변에서 희소성 있게 봐주더라고요. 저랑 스타일의 겹치는 윙어도 리그 내에 없어 나름 메리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격과 수비에서 큰 키가 옵션이 될 수 있고, 체력적으로 자신이 있기 때문에 최전방에서 안정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고요.”새로 입은 낯선 옷에 대한 기대와 자부심이 상당하다. 그랬기에 생소한 위치에서 빠른 적응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나락에서 꽃이 피다‘윙어’ 송승민은 스스로를 “운이 좋은 선수”라 말한다. 데뷔 첫 시즌부터 적지 않은 기회를 받았기 때문이다. 기회는 입단 이후 두 경기 만에 찾아왔다. 남 감독이 2014 K리그 챌린지 2라운드 부천 1995 FC전(3월 30일)을 앞두고 1군 훈련에 송승민을 불렀다. 30인 리저브 명단이 아닌, 18인 로스터였다. 그로서도 내심 프로 데뷔를 기대해 볼만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기대 안했어요”라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두 경기만의 공식전 출전은 신인인 그에게 언감생심이었단다. 기껏해야(?) 훈련 명단에 포함됐을 뿐이었다. 게다가 광주의 홈 개막전이었다. “경기를 뛰지 못해도 만족스러웠어요.” 이때까지 프로 경기 출전은 송승민에게 설마에 불과했다.설마는 사람을 잡았다. “준비해.” 남 감독의 지시가 떨어졌다. 부천전 후반 20분, 선발 출전한 김민수와 교체 투입됐다. 신인 대다수가 그러하듯, 그 당시는 그에게도 심장 떨리는 기억으로 뇌리에 남아 있다. “교체로 20분 정도를 뛰었어요. 심장이 터질 만큼 떨렸어요. 앞이 안보였어요. 너무 긴장해서 힘도 많이 들어가고요.”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그러다 휘슬이 울렸다. 다행이 이겼다. 포인트는 없었다. 뭘 했는지 기억도 흐릿하다. 그래도 기분 좋은 기억이라며 웃는다. 뛰는 것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수고했다는 남 감독의 짧은 한마디. 모든 게 좋은 기억이다. 무난했던 데뷔전이 전환점이 됐다. 부천전을 계기로 4라운드 안양전에서 처음 선발로 나섰다. 그 경기에서 송승민은 두 개의 도움으로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다. 그렇게 이름 석자를 광주팬에게 각인했다. 출전 시간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이후의 상황은 쉽지 않았다. 공격 포인트는 더 이상 터지지 않았다. 포인트를 이어가야 한다는 강박감이 찾아왔다. 무언의 압박에 짓눌려 스스로 무너졌다. 초조함에 한시라도 빨리 강박의 사슬을 풀려다 스스로를 더 강하게 옭아맨 것이다.사슬의 타래는 풀어내려 할수록 점점 꼬여만 갔다. 첫 시즌 막바지에는 경기를 못 뛰는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방출 명단까지 올랐다. 구단 내에선 다른 팀을 알아봐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첫 번째 시즌에 닥친 첫 번째 위기였다. “경기를 많이 못 뛰어 힘들었어요.” 신인인 그가 할 수 있는 건 제 할 일 묵묵히 다 하고 때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어쨌든 기회는 온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어쨌든 기회는 왔다. 경남 FC와의 승강 플레이오프 2차전. 선발로 나선 디에고가 전반 5분 만에 갑작스레 다쳤다. 슬픈 이야기지만 스포츠에서 누구의 부상은 다른 누구에겐 기회다. 남 감독이 송승민의 눈을 봤다.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 축구화 끈을 다급히 동여맸다.“얼떨떨했죠. 몸도 안 풀고 바로 투입됐거든요. 정말 오랜만에 기회를 얻었는데, 다행이 감독님께 좋은 인상을 심어준 것 같아요. 디에고 이상으로 잘해줬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감독님도 경기 끝나고 ‘고맙다’고 했어요. 제겐 또 한 번의 전환점이 된 경기죠” 광주는 2차전 승리로 골득실에 앞서 클래식 승격에 성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송승민의 활약으로 디에고는 짐을 쌌다.           이제 3년 차, 아직 갈 길은 멀다2014시즌, 그는 최고의 연말을 보냈다. 최고의 연말이 곧 최고의 연초를 의미하는 줄은, 그때는 몰랐다. 두 번째 시즌인 2015년, 그는 광주의 어엿한 주전으로 성장했다. 스스론 운이라 말하지만, 그저 운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기회를 간절히 기다렸다. 구단의 경기 분석관이 메일로 보낸 플레이 영상을 복습하며 단점을 고쳐 나갔다. 노력과 간절함은 또 다시 기회로 돌아왔다. 송승민은 2015시즌 대부분을 선발로 출전했다. 90% 이상 풀타임을 뛰었다. 4월에 갈비뼈가 부러지며 다섯 경기를 결장했는데, 그것만 아니었으면 풀타임 전 경기 출전도 기대해 볼 수 있었다. 이는 그만큼 남 감독이 송승민을 믿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감독님의 신뢰가 느껴지죠. 보답하고 싶은데 아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네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발전한 시즌이다. 출전수가 크게 들었다. 득점이 많진 않지만 하나같이 순도가 높다. 지난해 6월 20일(성남 FC전)엔 프로 데뷔 34경기 만에 클래식 데뷔 골을 터트렸다. 가장 중요했던 경기에서 골도 넣었다. 광주의 잔류를 결정짓는 골을 부산 아이파크전에서 터트렸다. 공중파를 타고 송승민의 세리머니가 흘렀다. 광주의 한 시즌 중 가장 중요한 순간에 터진 득점이었다. 정규 리그 네 경기를 앞두고 광주의 잔류가 확정됐다. 그간 못 뛰었던 선수들에게 기회가 돌아갔다. 송승민의 한 골 덕에 광주는 새로운 시즌을 일찍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아쉬움도 물론 있다. 자신은 물론, 소속 팀의 행보도 조금은 안타깝다. 광주의 초반 페이스는 승격팀 답지 않게 아주 좋았다. 그는 “시즌 중반까지도 6강을 바라볼 수 있는 상황”이라 회상했다. 그러나 시즌은 길었고, 위기는 어김없이 그들을 덮쳤다. 광주는 유니버시아드 개최로 클래식 팀 중 가장 오래 떠돌이 생활을 했다. 여름에 원정 10연전을 치렀다. 유니버시아드로 홈구장 잔디는 엉망이 됐다. 시즌 중에 목포축구센터를 임시로 활용했다. 홈 어드밴티지는 거의 기대할 수 없었다. “선수들과 스태프 모두 힘들었죠. 이 부분이 해결됐으면 더 나은 결과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광주의 아쉬움을 말하는 대목에서 그는 스스로 책임 지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을 밝혔다. 아무래도 공격수라 공격 포인트로 증명하고 싶은데 부족했다는 얘기였다. 현재 가장 큰 고민거리기도 하다. 작년보단 나아졌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학창 시절 땐 곧잘 골을 넣어 자신감도 있었다. 프로는 달랐다. 골 넣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 “데뷔 시즌엔 아무것도 모르고 공을 쫒아 다니기만 했어요. 올해는 클래식에서 뛰면서 경기력이 발전한 느낌이에요. 여유가 생기고 시야도 나아진 것 같아요. 내년엔 어떻게든 포인트를 올릴 거예요. 잘하는 걸 더 잘하려고 하고 부족한 걸 보완해야겠죠. 이 포지션에서 감각을 더 기르고 집중력을 높여야 될 것 같습니다.”그렇다고 그가 주전을 확신하는 건 아니다. 여전히 경쟁이다. 올해만큼 뛴다는 보장은 없다는 마음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더 많은 영향력을 팀에 미쳐야 한다. 최근 ‘광주의 기둥’ 김호남이 이적했다. 송승민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게 생겼다. 송승민가 잘해야 광주도 산다. 축구를 한 날 보다 할 날이 더 많다고 말하는 스물다섯 청년에게 무거운 짐이 지워졌다. 그런 그에게 인터뷰어가 미안해지는 얘기를 조심스레 꺼냈다. 축구 선수의 평균으로 따지면 송승민의 행보는 순탄하다. 아니, 오히려 점점 좋아지고 있다. 프로 2년차에 ‘풀타임 리거’로 성장했다. 무수히 많은, 피지 못한 꽃들을 되돌아보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고개를 들면 더 높은 곳에 자리한 또래들이 있다. “남들보다 출발이 늦은 만큼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축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송승민은 동계 휴가 때도 마냥 쉬지 않고 따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예전부터 몸 관리 하나만큼은 탁월했다. 선수는 몸이 재산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거친 태클에 쓸리지 않고 피하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그의 축구 이력에 부상은 거의 없다. 당연히 단 한 번도 수술을 한 적이 없다. 그는 세상에서 부상이 없는 선수가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새 시즌엔 38경기 풀타임을 뛰고 싶다고 웃는다. “38경기에 두 자리 포인트면 대표팀에서도 눈길을 주지 않을까요?” 프로의 세계는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차갑다. 그렇지만 그는 절대 조급하지 않다. 한 계단 한 계단, 헛되이 밟지 않고 차근차근 조심히 오르고 있다.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건 아니다. 프로라면 응당 부려야 할 욕심을 그도 갖고 있다. 다만 애써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양질의 내용물을 알차게 담기 위해 그릇의 외연을 신중하게 넓히는 과정이다. “광주에서 잘하면 더 나은 환경에서 뛸 수 있겠지요. 한 단계 올라설수록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고 봐요. 그런데 아직은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시기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 아닐까요. 그래서 이동국 선배 같이 롱 런 하고 싶습니다. 아직은 먼 얘기겠지만 몸이 허락하는 한 운동장에서 뛰고 싶어요. 그전에 매해 발전하는 모습 보이는 송승민이 되겠습니다.”           송승민이 말하는 OOO# 성격송승민의 첫 인상은 조용했다. 실제로 소곤소곤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치고받는 말이 점점 많아진다. 어쩐지 고등학교 땐 친구들이 힘들면 재밌게 해주는 ‘분위기 메이커’였단다. “처음엔 낯을 많이 가려요. 그런데 친해지면 계속 말을 하죠. 장난도 좋아하고요. 까불거리면서 할 땐 열심히 하는 그런 청년입니다. 하하.”# 장점“송승민은 어떤 선수인가요.” 기습 질문을 건넸다.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진짜 잘 뛰는 선수? 하하.” 광주의 체력왕다운 대답이다. 호리호리한 외모만 보면 쉽게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의 체력은 광주에서 손꼽힌다. 지난 동계 훈련 때도 체력 테스트에서 1위를 했다.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큰 키, 볼 재간, 유연함, 기본기, 한방. 선수 송승민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공격 포인트송승민은 인터뷰 내내 ‘공격 포인트’를 입에 담았다. 스스로도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이었다. 그것 말곤 좋은 일들만 있었다고 할 정도다. “내년은 골이 터지는 시점이 중요할 것 같아요. 집중력을 발휘해 두 자릿수 포인트를 올리는 게 새해 목표입니다.” 재작년 두 개, 지난해 일곱 개, 추이로 볼 땐 충분히 가능하다. # 제2의 임선영제2의 OOO. 누구에게나 붙일 수 있지만, 아무에게나 붙는 수식어는 아니다. “기분은 좋은데 형한테 미안한 소리죠. 형은 ‘넌 나보다 잘할거다. 자부심 가져라’고 하는데 어깨가 무겁죠. 선영이 형요? 멘털이 좋은 선수죠. 매사에 긍정적이에요. 매 경기 최선을 다하는 건 당연하고요. 주장으로서 리더십도 뛰어나고 축구장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모범적이죠. 다 닮고 싶어요. 너무 칭찬만 했나요? 하하.” # 광주 스타일광주는 상대가 강하다고 꼬리를 내리지 않는 팀이다. 광주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대체적으로 높은 라인을 유지한다. “내려서면 더 힘든 것 같아요. 볼을 갖고 있을 땐 안 힘든데, 공 없이 뛰면 힘들어서 볼 소유를 늘리는 경기를 하죠.” 광주 스타일은 새해에도 유효할 전망이다.# 남기일 감독남기일 감독은 2014시즌 클래식의 발견이었다. 광주 선수들 눈에 비친 남 감독은 어떤 이미지일까? “평상시엔 포커 페이스에요. 운동할 땐 더 무섭죠. 그런데 훈련 끝나면 달라져요. 선수들에게 장난도 많이 치고요. 선수 혼자 알아서 잘하게끔 신뢰를 보내는 스타일이에요.” # 디에고본문에서 언급하다시피 디에고의 부상은 송승민이 인생 경기를 펼치는 계기가 됐다. 그 이후로 디에고는 광주를 떠나 현재 바레인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다. 송승민이 디에고를 밀어낸 셈이다. 하지만 이후로도 그들은 변함없이 친하다. 브라질리언 디에고의 밝은 천성도 한몫했다.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고 지내요. 번역기 돌려가며 메신저를 통해 안부를 나누죠. 농담으로 그때 고마웠다고 종종 그러죠.” # 수원 FC송승민은 챌린지에서 겪었던 수원 FC를 새 시즌엔 클래식에서 만난다. 그가 느낀 수원은 어떤 팀일까? “까다로워요. 상당히 많이 뛰면서 상대를 괴롭히는 팀이죠. 체력과 조직력도 좋고요. 저희와 스타일이 비슷한 면이 있어요. 상주보다 까다롭지 않을까요? 기존 틀만 잘 유지하면 잔류도 가능할 거라 봐요.”     글=임기환 기자(lkh3234@soccerbest11.co.kr)사진=송승민 페이스북, 프로축구연맹

by 운영자 | Date 2016-01-12 10:01:15 | Hit 1032